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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철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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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스일렉 2023. 10. 18.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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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의 철도

 

철도의 건설

우리나라에 철도가 처음 소개된때는 1877년 일본 수신사로 다녀온 김기수가 일동기유에서 소개한 화륜거가 최초이다. 그후 철도의 중요성을 역설한 김흥집, 열강의 철도 건설 요구와 뉴욕의 한국 영사의 건의, 주미 조선공사 박정양등의 노력으로 1890년대에 철도의 중요성을 인식한 대한 제국은 18967월 철도의 부설, 관리, 감독을 담당하는 철도사를 설치하고 국제표준의 철도를 건설할것을 규정한 철도 규칙을 제정하게 된다. 또한 일본은 청일 전쟁, 러일전쟁을 위해 경인선, 경부선, 경의선을 개통하게 되며 러일 전쟁 승리로 대한제국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을 획득하게 되자 모든 철도를 국유화 했다. 또한 경부, 경인선을 통해 남북 종단 노선을 확보하고 식민지지배를 위해남서와 동북을 연결하는 경원선, 호남선, 함경선등을 차례로 부설한다.

 

일제는 식민지 지배 체제를 확립한 이후에도 수탈을 원할이 하기 위해 대대적인 교통망 확충에 나섰고 이런 계획은 1927년 조선철도 12년 계획을 통해 실행된다. 이에 따라 도문선, 혜산선, 만포선, 경전선(진주 - 전주, 원촌 - 담양), 동해선(원산 - 포항, 울산 - 부산)이 일부 구간 또는 전구간이 완공되고 사설철도인 경남선(마산 - 진주), 전남선(송정리 - 담양), 경동선(대구 - 학산), 전북철도(익산 - 전주), 도문철도(회령 - 도광진)등이 국유화 된다. 이로서 강점기 철도는 광산, 곡창, 공업지대를 연결하는 철도망이 형성되어 군사철도에서 산업철도(비록 그 목적이 자원의 수탈이나)의 모습을 띄게 된다. 또한 1937년 중일전쟁을 계기로 대륙침략을 목적으로 경부선, 경인선, 경원선, 함경선의 복선화를 추진하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의 말기에 일제는 전쟁으로 인해 극심한 물자의 부족을 격게 된다. 그리하여 조선의 철도 건설 사업이나 개량사업은 중단되거나 규모가 축소되게 되고, 심지어 경북선, 안성선의 레일을 걷어가기도 하고, 차량의 부품을 철거하여 군수물자를 생산하기도 한다. 이때 광주선(광주 - 담양), 경북선(점촌 - 안동), 경기선(안성 - 장호원), 충남선(홍성 - 장항), 금강산 철도(창도 - 금강산)의 철거계획도 있었다.

 

 

 

경인선

일본은 1892년 이미 서울 부산간의 철도 건설을 위해 측량을 마친 상태였으며 청일 전쟁의 물자 수송을 위해 1894년 서울 - 인천, 서울 - 부산간 철도 건설을 계획하기도 하였다. 한편 미국인 모스는 1896년 서울 - 인천간 철도 부설권을 획득하고 1897329일 인천 우각리에서 기공식을 거행한다. 이 노선은 1898년 자금부족을 이유로 일본 정부가 중심이 된 "경인철도인수조합"에 부설권이 팔리게 되며 1899918일 인천 - 노량진간 철도가 개통되어 대한민국 최초의 철도 노선이 첫 운행을 하게 된다. 그 후 19006월 한강철교가 개통됨으로서 같은 해 1112일 서울 - 인천간 철도가 완전 개통된다.

 

 

경부선

또한 일본은 대한제국과 대륙의 침략을 위해 한반도를 종단하여 중국과 연결하는 신의주 - 부산 간 철도 건설에 열을 올리며 그 첫 시도로 "경부철도주식회사"를 설립 , 189898일 경부철도합동조약을 체결하고 19008월 서울 - 부산간 철도 건설을 기공하게 된다. 일본은 러일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건설에 박차를 가하여 19051월 영등포 - 초량간 철도를 개통한다.

 

 

경의선

대한제국은 18967월 프랑스와 경의철도계약을 체결하고 부설권을 프랑스에 넘겼으나 프랑스가 이를 포기하여 1899년 대한제국에 반환한다. 이에 박기종등은 189976일 대한철도회사를 설립 부설권을 획득하고 경의선부설을 위해 노력했으나 자금 부족으로 여려움을 격는다. 때문에 동년 9월 궁내부의 내장원에 서북철도국을 설치 국가자본으로 직접 경의선 건설을 결정하게 된다. 서부 철도국은19023월 서울 - 개성간 철도를 착공하였으나 마찬가지로 자금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던 중 러일 전쟁이 발발되고 전쟁물자 수송을 위해 일본은 경의선 부설권을 장악한다. 190426일 일본은 러일전쟁을 위해 경의선을 군용철도로 만들기 위해 임시 군용철도감부를 설치, 조기 완공을 위해 노력하여 19064월 용산 - 신의주간 철도를 완전 개통하게 된다.

 

 

경원선

경원선은 1899년 서북철도국에서 관장하여, 박기종 등의 대한 철도회사에 부설권을 넘겼으나, 자금조달에 실패하자 일제가 경원철도 차관계약을 통해 부설권을 장악하였다. 러일전쟁을 통해 군용 철도로 만들었으나 러일전쟁이 끝나자 건설이 잠시 중단되었다. 이후 1910년 다시 착공하여 1914916일 용산 - 원산 간의 경원선이 완전 개통하게 된다.

 

 

호남선

1894년 프랑스의 요구를 거절하고 1904년 이윤용의 호남철도 주식회사에 강경 - 군산간 철도와 공주 - 목포간의 철도 건설을 허가 한다. 호남철도주식회사는 주식공모로 자금을 조달하고 우리 손으로 철도를 건설하고자 하였으나 군사상 중요한 경목철도(호남선)을 개인에게 건설하게 할수 없다는 일제의 압력으로 결국 일제에 의해 191011일 착공되어 1914122일 개통된다

 

함경선

조선 북부와 동서 함경남, 북도의 지하자원 수탈을 위해 일제에 의해 1914101일 착공하여 19281125일 개통하게 된다. 이로서 5대 간선인 경부, 경인, 호남, 경원, 함경선이 개통되어 서울 - 대전을 축으로 한반도를 대각선으로 종관하는 식민지 철도의 완전한 모습을 갗추게 된다.

 

평원선

평양 - 원산간 철도인 평원선은 를 연결하는 노선으로 동해를 통해 일본 본토와 연결되는 중요한 노선이다.

이 노선은 1926년 착공하여 1941년 개통된다.

 

경경선(중앙선)

조선중앙철도 부설계획에 의거하여 개통된 노선으로 청량리와 경주를 연결하는 노선이다.

1936년 착공하여 194241일 개통되었다.

 

 

일제 강점기 철도의 운영

 

일제 강점기에 열차의 운영속도 및 운영 횟수에서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 졌다. 경인선의 경우 개통 초기 인천에서 노량진까지 1시간 30분정도 걸렸으며 운행 횟수는 하루에 1~3회 정도였다. 하지만 1905년 이것이 14~6회 정도로 늘어났다. 또한 경부선은 서대문 - 초량간 1일 남행과 북행의 2개 열차가 편도 30시간 정도 걸렸었다. 이것이 19055월에 직통 급행열차가 14시간, 1906416일부터는 11시간에 주파하는 급행열차를 운행했다. 경의선은 190841일 부산 - 신의주간을 운행하는 "융희호"를 운영했으며 1911111일 압록강철교가 완공되어 만주의 안동역까지 운행한다. 또한 남대문 - 장춘을 운행하는 주 3회의 직통 급행열차를 운행했으며 이어서 1912615일 무터 부산 - 장춘간의 급행열차를 운행하게 된다.

 

그후 열차의 운행 속도는 급격히 상승되어 1932년에는 서울 - 부산간을 8시간대에 운행하고, 12시간이 소요되던 서울 - 신의주간을 8시간 54분에 주파하게 된다. 당시 유명했던 특급열차로는 부산 - 장춘간의 "히카리호", 부산 - 심양간의 "노조미호", 부산 - 서울간을 6시간 45분에 주파하는 "아까스키호"등이 있었으며, 특히 부산 - 북경간 (2068km)38시간 45분에 직통운전하는 국제 여객열차등이 있었다. 한편 국내외 연락운수는 1907년 경부 - 경의선과 연안항로를 중심으로 하는 것과, 1915년 이후 만주철도와 중국 국유철도 6개선과의 연락운수등이 있었다.

 

 

 

출처 : 한국철도 100년사 - 철도청 - 요약 발췌